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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글씩싼티이야기4(완결)

다음날 타라가 싼티의 집으로 찾아왔지만 싼티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하고 타라를 돌려보냈다. 싼티는 나쁜 기분을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우울한 듯 차가운 분위기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타라가 가고 나서 한참 뒤에 싼티가 차분한 걸음걸이로 문밖을 나섰지만, 엄마는 차마 그것까지 말리지는 않았다.

그저 잠깐 바람쐬러 가는 것이겠지.’

엄마의 말을 거스른 적 없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잠깐만 나갔다가 일찍 돌아와.”라고 할 뿐이다.

 

집에서 나온 싼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동네를 벗어나면서부터는 뛰기 시작했다.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천막이 점점 가까워지고 아이들이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개진 얼굴로 교실로 들어섰다. 모든 눈이 싼티에게로 향했다. 타라가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싼티는 몰랐지만 카이라도 싼티를 보며 웃고 있었다.

왔구나. 자리에 앉으렴. 카이라.”

선생님이 카이라에게 눈짓을 하자 카이라가 얼른 일어나 책상을 양보해줬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대로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거친 숨도 금새 가라앉았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도 어느샌가 훌쩍 잊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내일 또 만나요.”

수업이 마치자마자 싼티는 곧장 교실을 떠났다. 카이라가 뭔가 말을 걸려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다시 전속력으로 뛰어야 한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또 어딜 다녀왔어? 학교에 간 것은 아니겠지?”

아닌데. 타라네 가봤는데 없길래 혼자 다니다가 돌아왔어.”

말하는 모양새가 영 수상했지만 어제 속상한 일도 있었고 싼티가 엄마에게 거짓말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싼티는 다시 집을 나와 타라네로 향했다.

또 나가는거야?”

. . 타라 왔나해서. 잠깐만 가보고 올게.”

싼티는 타라네 집 앞까지 갔지만 문을 두드려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 집 바깥을 서성이다가 괜히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역시나 자기 집 바깥에서 서성이는 타라를 발견했다.

타라!”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 왜 그렇게 일찍 가버린거야?”

.”

타라를 끌고 한 쪽 구석으로 갔다.

엄마가 학교를 못가게 해서.”

아니. 어째서?” 눈이 똥그래지는 타라.

나도 잘 몰라. 그렇지만 난 학교에 갈거거든. 늦게 출발해서 학교에서 일찍 나올거야. 우리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줘. 그리고 아줌마한테도 비밀로 해줘.”

싼티는 영리한 아이다. 순진무구하고 소심했던 싼티는 필요성이 생기자 거짓말을 하기로 작정했다. 완벽하게 해야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거짓말을 꾸며내는 자기자신에게 싼티는 스스로 놀랐다. 둘 사이의 비밀은 그렇게 몇 주간이나 유지되었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싼티는 매일 학교로 달려가고, 공부하고, 다시 집으로 달려왔다.

 

그 날도 어김없이 학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천막이 보이는데 분위기가 평소와는 달랐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몇몇 아이들도 교실 안에 있지 않고 그 무리에 섞여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익숙한 광경이다. 어른 무릎 높이쯤 되는 단상에 올라가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한 남자. 그 곁의 단상 아래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익숙한 얼굴. 아빠다. 가슴이 두근대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싼티를 본 것 같지는 않았다. 싼티는 몸을 돌려 다시 집을 향해 뛰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렸다.

들켰으면 어쩌지? 어떡하지? 나도 손가락이 잘리게 되는걸까? 아니면 손목이 잘리지 않을까? 아니야. 학교에 온 건 몰라. 그냥 가봤다고 하면 되겠지. 그 말을 믿어줄까? 이 일로 엄마와 또 싸우게 되는 건 아닐까? 이번에는 엄마를 죽이게 될까? 거기 총 가진 사람도 있었는데. 그럼 나 때문에 엄마가 죽는거잖아. 엄마가 없으면 난 어떡해야 할까.’ 온갖 걱정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울면서도 달리는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자기마을 입구에 도착해서야 싼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가쁜 숨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구토가 났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금방이라도 아빠가 이 동네로 쳐들어올 것 만 같았다. 무거운 다리를 겨우겨우 끌고 집안에 들어섰다.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엄마가 심상치 않은 숨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땀으로 범벅된 싼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고 숨을 내쉴 때마다 구토냄새가 났다. 무엇에 놀라 얼이 빠졌는지 크게 뜬 눈이 두려움에 흔들리고 있었다.

왜그래. 싼티야. 왜그러니? 무슨일이야? 왜그러는건데? ?”

아이를 부축해 자리에 눕히는 엄마의 손이 두려움으로 떨렸다. 무조건적인 불안감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뭔가에 놀랐는지, 못된 인간들에게 나쁜 일을 당했는지, 머릿속에 온갖 나쁜 상상들이 떠올라 그녀를 괴롭게 했다. 물을 마시게 하고 땀을 닦아주니 싼티는 곧 안정되었다. 얼굴에 아직 열이 남아 있었지만 무릎이 까진 것 말고는 별다른 상처도 없다. 엄마는 싼티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차 물었다. 싼티는 무슨 말을 해야 엄마를 안심시키고 학교에 나가는 것도 안 들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악마를 봤어. 봤는데, 악마는 나를 못봤어. 그래서 들키기 전에 얼른 도망쳐 온거야.”

엄마는 안심이 됐다. 아마 이 곳에서 적응이 덜 됐기 때문일거라 생각했다. 싼티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중간 중간 엄마가 몇 번 살피러 오는 것을 알았지만 그저 자는 척 했다. 비몽사몽 간에 타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뇨. 전 잘 모르겠는데요. 오늘 학교갔다 와서 싼티랑 놀려고 왔어요.”

왜냐면 지금 싼티가 많이 아프거든. 저기, 혹시 아이들이 싼티를 싫어해서 괴롭히니? . 근데 뭐? 너 학교에 다니니? 그렇구나. 그래, 어쩐지 똑똑해 보이더라.”

. 오늘 학교에서 간식을 줘서 싼티랑 같이 먹으려고 와봤어요.”

싼티는 잠이 확 깼다. 큰일이다. 여태 타라랑 놀겠다고 바깥출입을 했는데 이제는 들켰을지도 모른다. 싼티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둘이 여태 무슨 얘기를 했을지, 이걸 어떻게 둘러댈지 고민에 빠졌다. 생각을 해봐도 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고 일단 타라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라. 언제온거야?”

싼티는 큰 소리로 말하며 방을 나섰다. 타라는 도둑질하다 들킨 표정을 하고 있다가 싼티를 보고는 금새 얼굴이 환해졌다.

싼티. 이제 안아픈거야? 나랑 같이 나가자.”

아픈데 바깥에 가지 말고 집안에서 놀아라. 아줌마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두 아이는 별로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마주보았다. 걱정되었지만 엄마는 싼티를 내보내 줄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남은 싼티엄마는 마음이 번거로웠다.

싼티가 내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 다니는걸까.’

순진한 딸이 자기에게 거짓말 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싼티 엄마조차도 이젠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정도로 딸애는 요즘 거의 매일을 규칙적으로 외출해왔다. 그리고 이전의 우울함이 많이 없어졌고 말도 많아졌다.

내 아이가 내게 거짓말을 할 리 없어.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자식을 믿어버리는 쪽으로 결론 내려 했던 모성애는 다른 반론을 들고 나왔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사실이라서 애아빠한테 어느 날 들키거나 결혼 후에 불행하게 살게 되면 어떡하지? 나처럼 된다면 난 아마 미칠 거야.’ 마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싼티엄마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졌다. 반드시 아이를 단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싼티. 너 요즘에 누구랑 놀러 다녀?”

싼티가 외출에서 돌아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말을 건넸다.

타라랑.”

흘끔 쳐다보며 대답하는 싼티는 엄마가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확실치 않은 이상, 끝까지 버티기로 했다. 그리고 타라랑 노는 것은 사실이니까.

맨날 어디로 놀러 다니는데?”

그냥 동네 여기저기 다니느거지.”

엄마가 찾으러 나가보니까 없던걸.”

“.........길이 엇갈렸나보지, .”

“.........학교 다니는 건 아니겠지?”

안다녀. 엄마가 다니지 말라면서.”

근데 왜 엄마 안보고 딴데 보고 얘기하는거야?”

그게 뭐 어떻다는거야. 엄마는 뭐 날 관심있게 봐준 적이나 있어? 집에 같이 있어도 엄마랑 나랑 서로 쳐다도 안보는데.”

학교 가지 말라고 했잖아! 갔는지 안갔는지 묻는데 그런 얘기가 왜 나오는거냐?”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거 들어준 적 있어? 내가 뭘 원하는지 알기나 해? 항상 엄마 맘대로만 했잖아. 엄마는 내가 바라는 걸 안 들어주는데 왜, 나만 왜, 엄마가 시키는대로만 살아야 해? 밥만 먹으면 사는거야? 죽을 때까지 먹고자고 먹고자고 하다가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돼? 내가 무슨 돼지새끼야?”

싼티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니 엄마는 당황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온거야? 밖에 나다니더니 그렇게 된거잖아. 못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

어울리기는 누가 어울려. 엄마 때문에 난 친구 하나도 없는데!!”

그러니까 학교에 가지 말라고. 그리고 친구가 무슨 소용이....”

엄마도 학교에 다녔잖아. 그래서 책도 읽고 글씨도 쓴거잖아. 나한테 책도 읽어줬잖아. 왜 난 그렇게 하면 안되는건데.” 싼티의 목소리가 눈물에 잠겨갔지만 엄마는 여기서 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다녀봤으니까 말리는 거잖아. 다녀보니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인생에 보탤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널 위험하게 할 뿐이라구. 그 친구들도 너한테 아무 도움이 안돼. 아무튼 앞으로는 학교 다니지마.”

아니. 난 갈래.”

안된다고 했지? 그럴거면 집을 나가.”

 

그때 바깥에서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열리고 싼티의 아빠가 손님과 함께 들어왔다. 모녀 사이에 흐르던 냉기가 수습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런 전면전은 처음인지라 싼티와 엄마는 둘 다 혼란스러웠다. 둘은 어색한 표정으로 손님맞이를 했다. 싼티아빠는 집안의 공기가 평소와 다른 것을 느꼈다. 손님에게 즉시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은 것이 못마땅했지만 오늘은 손님이 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가족 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싼티아빠는 조금도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은 아빠가 매우 원만하며 이해심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손님은 키가 작으나 풍채가 좋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시종 웃는 얼굴이었으나 턱에 살이 쪄 탐욕스러워 보였다. 싼티 아빠는 자기를 후원해주는 동료라고 하며 자기의 처자도 그에게 소개시켰다. 늙은 남자는 입술을 훑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부자이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지원을 하는지 내내 칭찬하는 동안, 늙은 남자는 싼티를 간간히 쳐다봤다. 싼티엄마는 그의 못된 시선과 더러운 버릇이 께름칙하고 불쾌했다. 자기 아버지보다도 더 늙은 남자가 자기 딸을 흘끔거리는 것이 즐거운 엄마는 없을 것이다. 차를 마시고 난 후 아빠는 챙겨갈 물건이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남은 셋은 잠시 어색한 침묵속에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집에 오랫동안 못 오게 될거 같아. 몇 달이나 몇 년이 될 수도 있어. 좀 멀리까지 가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집에 한 번 들러본거야.” 싼티의 아빠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동안, 늙은남자는 싼티의 손을 잡아 입맞춤으로 인사했다. 그들은 곧 집을 떠났다.

 

다음날이 되자 집에서는 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싼티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입씨름이 길어지자 싼티와 엄마는 둘 다 지쳤다.

도대체 왜 말을 안 듣는거야. 너는 니가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른다구. 해봐야 득 될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난 학교에 갈거야. 엄마처럼 살기 싫어. 공부한다고 해도 꼭 엄마처럼 되지는 않을거야. 거기는 다른 여학생들도 많아. 선생님도 여자 선생님이야. 난 정말로 엄마처럼 살기는 싫다구!!”

나처럼 살기 싫어? 나처럼? 내가 어떻길래?’

엄마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다. 멍해진 엄마를 뒤로 한 채 싼티는 이제 숨길 것 없다는 태도로 당당히 집을 나섰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은 싼티는 그 일은 이제 잊기로 했다. 손가락이 잘린다면 발가락으로 공부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이렇게 만든 아빠가 미웠고 그 질서에 순응해 자기를 잃어버린 엄마도 미웠다. 그래도 어린시절 책을 읽어주던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 한쪽 구석이 사르르 아팠다.

 

싼티. 싼티야. 무슨 생각하니? 오늘은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고 가렴. , 내일보자. 얘들아.”

어느새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 몇몇은 아직 가지 않고 여전히 교실에서 떠들고 있었다.

싼티. 공부하는 건 어때. 재미있니?”

.”

. 이제 공부한 지도 꽤 되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려면 노트랑 연필을 준비해보는게 어떨까 해서. 그럴 수 있겠니?”

싼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는데 엄마에게 그런 요구까지 할 수는 없다. 싼티가 한참 대답이 없자 선생님은 알았다는 듯이 자기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선물로 줄게. 당분간은 이걸 쓰도록 해.”

고맙습니다.”

처음 가져보는 노트와 연필에 싼티는 뛸 듯이 기뻤다.

그래. 열심히 하렴.”

 

마을에 거의 도착한 싼티는 새 노트와 연필을 옷 안으로 숨겼다. 집안에는 엄마가 멍하니 앉아있었다. 평소보다 더 기운없는 모습이다.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싼티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노트를 매만졌다. 첫 장을 넘기자 새 노트의 냄새가 좋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싼티.’ ‘타라.’ ‘엄마.’ ‘엄마.’

노트 위로 눈물이 똑 떨어졌다.

엄마, 사랑해.’

엄마는 예쁘다.’

눈물이 똑똑똑 떨어졌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마하이라엄마의 이름을 적어보았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싼티는 노트를 들고 나가 식탁에 펼쳐뒀다. 엄마가 노트에 적힌 글씨를 읽고 방긋 웃었지만 별 말은 없었다.

싼티. 공부하고 싶어?”

“.....”

하고 싶으면 해도 돼. 그렇지만 아빠에게 들키면 정말 큰일날 거야. 너도 알잖아?”

외할머니 집으로 가면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당분간은 아빠가 오지 않는댔으니까 일단은 다녀봐.”

난 계속 다닐건데?”

아빠가 어떤지 몰라서 그래? 넌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

싼티는 대답대신 한숨을 쉬었다. 마하이라는 남편이 무서웠지만 설마 딸에게까지 해꼬지 하지는 않을 거라고 여겼다. 이왕 하는 거니 잘했으면 좋겠다. 학교에 보내는 것은 두려웠지만 자신이 집에서 가르친다면 이번에는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럼 내 아이 싼티는? 그 누구도 지켜줄 사람이 없다. 노트에 적혀있던 사랑한다는 말이 떠올라 그녀를 괴롭게 했다. 남편을 증오하는 만큼 한번도 딸애를 사랑한 적이 없었지만 또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마하이라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왠지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싼티는 집안에만 있는 일이 잘 없었다. 마하일라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똑똑똑.’

이 시간에 누구지?’

문을 열자 체구가 큰 중년의 여성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싼티네 집인가요. 저는 싼티 학교 선생님입니다.”

마하일라의 마음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긴장으로 굳은 표정을 눈치챘는지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별일은 아니고,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채 선생은 가방에서 종이와 노트를 꺼냈다. 이런 건 남편이 보면 안된다. 마하이라는 손가락이 잘리던 날의 기억이 떠올라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싼티가 참 착하고 영리합니다.”

. 그래요.”

마하이라는 선생이 건네 준 노트와 종이를 냉큼 받아들었다. 큼직한 글씨가 빼곡이 들어찬 종이는 받아쓰기 시험지다. 시험지 위에 x표가 없는 것보다 싼티의 글씨를 보는 것이 기뻤다. 글씨를 손가락으로 살짝 더듬어 보았다. 종이에 글씨를 꾹꾹 눌러쓰는 싼티의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났다. 노트를 펼쳐보니 짧은 일기가 씌어 있었다. 주로 타라와 논 얘기나 친구들에 관한 얘기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족에 대한 글은 없었다.

이건 다 쓴 노트고 엊그제 새 노트를 한 권 더 줬습니다.”

. .”

근데 집에서는 혹시 싼티가 학교 다니는 것에 반대하나요? 이제는 여성들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미 도시에는 학교가 많아요.” 선생은 마하이라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머니께서도 이미 교육을 받으신 것 같은데...우리 학교의 학부모 중에서 유일하게 글을 읽으시는 어머니세요.”

선생의 말투는 약간 꾸짖는 투였다. 마하이라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슬며시 감싸쥐었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는 제가 다 알 필요는 없겠지만...아무튼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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