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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호주일상] 나의 코에 엘보우를 날린 그는 누구?

누군가가 나의 코에 엘보우를 날린다.

제대로 배운 녀석이다.

엘보우의 각도는 중력과 정확히 수직방향이었다. UFC에서 조차 금지된 공격. 수직엘보우.

내 코를 망가트리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일 것이다.

상대는 최근 수차례의 수술로 내가 쇠약해져 있음을 알고 있다.

얼음처럼 차갑고도 날카로운 공격을 날린 이 녀석은 누구일까.

어릴때부터 난 엄살이 적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꽤나 심한 통증에도 태연한 척, 쿨한 척.

하지만 잔뜩 찡그린 눈에서는 밀가루 폭탄을 맞은 피오의 눈물과 비슷하게

또르르 한방울의 눈물이 흐른다.

나는 그 고통의 크기만큼 시원스레 비명을 지르는 방법을 모른다.

그것을 가르쳐줘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나? 갑자기 드는 의문이다.

작년 왼쪽 손목 수술 후, 열심으로 재활 운동에 집중하던 하던때가 생각난다.

닥터는 제 손목인냥 과감하게 나의 손목을 이쪽 저쪽으로 꺾는다.

순간적으로 굳어있던 인대는 중추신경계 통각의 경로를 통해 자극을 전달하며 나름대로 비명을 질러댔지만,

내 입술은 최근 TV에서 본 유명가수이자 전문 몰카범 정모씨의 두 손처럼 묶여있었다.

이대로 계속 내 손목을 맡겼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닥터에게 어느정도의 화학반응이 뇌에 전달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껏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흔들었다.

이정도의 표현력이라면 충분했다라고 생각하며 그를 곁눈으로 흘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두눈은 여전히 나의 왼쪽 손목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늦은 밤 김준현의 라면 광고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신라면 두개를 끓여 순삭한 직후인가 싶을 정도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내 왼손은 자유를 얻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저 나지막히 신음을 뱉었다가 곧바로 입을 다문다.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써본다.

사방은 어둡고 싸늘하다.

나에게 엘보를 날린 그녀석과 차갑고 거대한 벽 사이에 갖혀버린 느낌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술적인 레슬링으로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컨트롤하고 있다.

정확한 타격에 찐득찐득한 레슬링까지 갖춘 녀석이라니.

상위 포지션을 점유하고 있는 그는 언제든 나에게 초크를 걸 수 있는 상황이다.


그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지 한참이나 지난듯하다.

내가 탭을 친다한들 순순히 풀어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그보다 한참이나 키가 큰 여성이 그의 뒤를 커버해주고 있다.

1대1도 아닌 2대1의 싸움이었던 것인가.

나는 어쩌자고 이 승산없는 싸움에 끼어든 것일까.

고통은 몇시간동안이나 계속된다.

인고의 시간을 참고 또 참아 그 지옥같은 올가미에서 벗어나면

나도 모르게 또 쓴 웃음을 짓게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작 수백달러가 문제였나.

그 때문에 매일같이 이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걸까.

양세형의 들기름맛 겉절이와 같이 짜증과 측은함이 엉망으로 버무러져있는 눈빛으로,

데비존스에서 산 퀸사이즈의 코알라 매트리스에

아무것도 모르는체 편안히 잠들어 있는 아이작과 제인을 내려다 본다.

"역시 침대는 킹사이즈를 샀어야했어..."

깊은 한숨은 아침 이슬을 털어내고, 상큼한 아침해는 서서히 어두움을 밝힌다.






출처 : 오늘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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