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

하루한글씩오늘의 프롤로그(2)

두 번째. 이번에는 소개글도 써보았다.


-


소개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신이 나를 환생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것도 어느 세계의 시녀로 살아갈 운명이란다. 여기에서도 노예처럼 일만 했는데 그건 너무 야박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것이 운명이다.”라는 박정한 소리를 한다. 그래서 홧김에 신을 죽이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차라리 신이 되기로 했다.



  한지민, 스물두 살.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지혜로우신 어머니 밑에 장녀로 자라 온갖 갖은 일을 도맡아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성인이 된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특기는 딱히 없으나 뭐든 열심히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스물세 살에 과로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누가 그랬냐고?

  “확실하죠?”
  “그럼. 난 신이니까.”

  무려 신이 그렇단다. 그리고 정말로 신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흰 빛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 누가 보면 아주 네온사인 광고인 줄 알겠네.

  “근데 굳이 제 꿈에 오셨네요?”
  “미리 알려주려고. 마음의 준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

  신이라고 해서 거창한 줄 알았는데, 꽤 사람다운 소리를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는 건 좋지만 아직 일 년이나 남았는데, 너무 성급한 거 아닐까?

  “그럼 지금부터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요?”
  “그래도 스물세 살에는 죽는다.”

  신은 그렇게 말한 다음, 못마땅해 하는 나를 위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살생부에 그렇게 되어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윙크를 하는 신이라니. 세상에.

  “일단 좀 쉬어야겠으니 제 꿈에서 나가주실래요?”

  신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내 꿈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 신을 쫓으려는 찰나에 신이 흘려들을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다음 생에는 시녀로 태어날 것이다.”
  “네?”

  시녀요?

  “잠깐만요. 여기에서도 일만 했는데 다음 생에도 시녀라니, 그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 않느냐.”
  “네?”

  아니, 대체 이렇게 무책임한 신이 어디 있어. 이제 보니 신이라고는 했지만 그냥 흰 빛이 번쩍번쩍 빛날 뿐이고, 사실은 사이비인 게 아닐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싫다면요?”
  “그게 네 운명이다.”

  운명?

  남의 꿈에 쳐들어와서 운명을 강매하다니. 신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일을 해온 걸 알면 쉽게 저런 소리를 못할 텐데. 재벌 집 자제로 태어나도 모자랄망정 시녀로 태어난다고?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꿈인 걸 이용하기로 했다. 꿈이니까 협박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총을 꺼내든 다음 신에게 겨눴다. 상상력이 빈약하기 때문인지 어째 외형이 영 대충 조립한 장난감 같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눈높이 교육을 안 받아서 창의력이 좀 부족하다.

  “좋은 말로 할 때 제 운명 바꿔주세요. 그러면 쏘지는 않을게요.”
  “그럴 수는 없다.”
  “진짜 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냥 쥐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총을 쏘고 말았다.

  “앗,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쏠 생각은 아니었어요, 하고 말하려는데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신 사납게 번쩍이던 빛도 사라지고 없었다.

  “신님?”

  하고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죽은 거 아니죠?”

  그렇게 물어봐도 대답은 없다. 나는 총을 내려놓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역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신도 없다. 그냥 개꿈인 걸까?

  “신님? 진짜 총 맞고 죽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내 목소리만 둥둥 떠다녔다. 뭐야. 신인데 총 맞고 죽다니. 내 꿈이라서 그런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신 해야겠다.”



출처 : 오늘의 유머

파일없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