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동사니

하루한글씩[까까김 엽편선] 요괴들 극락왕생하다


 언제나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지옥의 한 구석. 할 말 많은 수십만의 악귀들로 광장은 늘 시끄럽다. 저마다 자신의 결백 내지는 정상참작 여부에 대해 떠드느라 불지옥은 이미 말지옥이 된 지 오래. 그 정신없는 아무 말 대잔치의 와중에 유독 열에 들뜬 대화가 있다.

 “씨발 가슴도 작은 게 무슨 수치심이 어쩌고 자기 결정권이 어쩌고 유세질이야. 내가 뭐 한 번 대달라고를 했나 자자고를 했나. 꼭 없는 것들이 자존심만 살아서 뻗댄단 말이야. 그 잠깐 갖다 댄 거 갖고 성추행이라고 지랄이면 세상 남자들 범죄자 아닌 놈이 없겠네.”

 “정작 보면 당했다는 년보다 옆에서 발악하고 선동하는 년들이 더 문제예요. 지들이 당한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화가 나서 난리들인지. 내 경우만 봐도 그래요. 당사자는 별 말 없었어. 내가 물고 빨고 별 짓을 다 해도 잘만 받아주더라고. 근데 옆에 있던 년들이 사달을 내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내가 지들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나.”

 “남자들은 적이 많아. 외모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연배가 다르면 어떻게든 적이 되지. 남자의 국적은 수백만 가지가 될 수 있어. 하지만 여자는 안 그래. 여자에겐 그저 여자이면 충분한 거야. 여자의 국적은 여자야. 남자에게 호의적인 여자들이란 여행자거나 망명자, 아니면 공작원인 게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 겁니다. 자기들 원하는 대로만 살아지는 게 세상이 아니란 걸 어린 것들이 어떻게 알겠어. 쓸데없는 자존심 같은 건 일찌감치 내려놓고 때로는 자기가 가진 것으로 승부를 볼 줄도 알아야지. 나이를 먹어봐야 압니다. 사회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백날 떠들어도 결국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더 살아봐야 깨닫겠지요.”

 대화의 주인공들은 음란마귀라 불리는 요괴들이다.

 각기 화상으로 천차만별인 악귀들 중에서도 그들은 가장 저질 부류에 속한다. 출신 성분은 꽤나 화려하다. 정치인, 배우, 시인, 기업인, 교수 등 인간 사회에서 배울 거 배우고 벌 거 버는 자들로 명성도 드높았다. 하지만 소위 말하듯 좆대로 살아보려다 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좆대로 사는 삶을 꿈꾼다. 그래서 언제나 여자가 있는 대화를 하고, 여자가 없기에 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처지가 비루해서 누릴 것도 못 누리는 놈들과 충분한 값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년들의 원념이 자신들을 나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어리고 예쁜 것들 브래지어 끈 한 번 재미 삼아 풀어볼 수 있고 팬티에 손도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놈이라면 누가 우리를 비난하려 들까. 우리가 돈다발깨나 쥐여줬대도, 정식으로 스폰서가 되어줬대도 우리를 비난하는 년이 있을까. 지옥에 와서 그들은 다른 악귀들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았다. 처벌 이전에 교화의 단계가 있었고 교화의 조건은 진실한 반성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만의 악귀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죗값을 치른 뒤 성불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자리를 지켰다. 죄를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반성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여체들의 감촉과 관능, 분위기를 떠올리며 가학적인 행복감에 젖었다. 영혼에 깃든 음욕은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야릇한 황홀감 속에서 나날이 추잡해져갔다. 그들이 수십만 악귀들 중에서도 가장 저질로 취급받는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옥의 왕은 음란마귀들을 어떻게든 단죄하려 했으나 그들은 줄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과중한 업무에 치여 골골거리던 지옥의 왕은 언제부턴가 그들에게서 손을 떼어버렸다. 그렇게 반성도 단죄도 없는 지옥은 서서히 음란마귀들의 세상이 되어갔다. 진정한 악이 번영을 이루는,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세상이 말이다.




출처 : 오늘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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